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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35th 2010. 9. 7. 02:16

축축한 숲의 향기를 실은 해풍의 끝자락에서 송장 썩는 고린내가 피어올랐고, 고린내가 밀려가는 바람의 꼬리에 포개져서 섬의 꽃향기가 실려왔다.

이 아찔한 숲 내음처럼 소설에는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군법을 집행하던 날 저녁에는 흔히 코피가 터졌다. 보고서쪽으로 머리를 숙일 때, 뜨거운 코피가 왈칵 쏟아져 서류를 적셨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나의 적은 무엇인가? 왜의 침입을 막는 장수이기에 앞서 이순신은 자신의 진정한 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서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늑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임금은 이순신을 두려워하지만 나라를 지켜야할 사람이 없어서 이순신을 죽이지 않았고 이순신은 눈앞의 적 뿐만 아니라 서울의 권력도 자신의 적임을 인식합니다.

...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일본인 포로들이 우연한 사고로 죽은 포로 동료의 시신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며 이순신은 자신의 적은 저들을 동정하려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의 전쟁은 나의 죽음으로써 나의 생애에서 끝날 것이었다.

고군산군도와 위도는 수군 기지를 풀 만한 곳은 아니었다. 섬 앞바다가 막힌 데 없이 넓어서,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 죽을 자리가 아니었고 싸울 자리도 아니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이라도 하듯 이순신은 무인으로서 자신의 생은 전투 중에 그것도 죽을 자리에서 죽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그 때, 나는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염하고 싶었다."

말은 비에 젖고,
청춘은 피에 젖는구나.

"적이지만 준수했습니다. 내 부하였더라면 싶었습니다."

청춘의 날들은 흩어져가고,
널린 백골 위해 사쿠라 꽃잎 날리네.

"내 젊은 적들은 찌르고 베는 시심의 문장가들이었다. 내 젊은 적들의 문장은 칼을 닮아 있었다."

이 소설은 역사 속의 한 시기를 집중하기보다 무인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에 집중합니다.


책의 말미에 인물 소개가 나옵니다.
이 인물지를 읽으며 저는 이순신의 인물됨을 닮고 싶었습니다.

정탁은 이순신을 구명하기 위한 상소를 올렸다.
최희량은 이순신이 전사한 소식을 알고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정사준은 전쟁이 일어나자 형제들과 함께 이순신의 막하로 들어왔다.
정경달은 이순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이억기는 이순신이 체포되어 국문을 받을때 통렬한 울분의 편지를 옥중으로 보냈다.
이순신은 정운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다.
송대립은 동생 송희립의 군유로 두 형제가 모두 이순신의 막하로 들어갔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일이 때로는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어 낙담하고 실망하게 될 때가 많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는 것입니다.


이순신의 그런 점을 본받아 살고 싶지만 그것은 힘들것같고 그 주변의 사람들처럼만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아니면 그 주변사람들이 인정할만큼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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